돌아가고픈 날들

앞만 바라보며 살아가기에는 너무 벅찰 때 가끔 뒤를 돌아보고는 한다. 옛날에는 이랬었지.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저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는 그 순간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붙잡으려 애쓰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가장 생각나는 시절은 바로 고1 때인 1997년이다.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에게 고등학교 생활은 말그대로 신천지였다. 멋 모르고 가입했던 만화창작 써클에서는 다양한 컬쳐쇼크를 경험했으며,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것도 처음이었다. 맨날 오락실을 전전하며 다녔지만, 운 좋게도 당시 학교 성적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덕분에 공짜로 학원을 다니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이때는 IMF 이전이라 경제도 좋았던 터라 물질적인 부담도 없었다. 당시 우리 학년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 무렵의 나에게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교에 들어간 2000년도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해였다(생각해보니 신분의 변화가 생기던 때를 가장 그리워하고 있군). 입학 후 가장 고민을 하였던 것은 어느 동아리에 드느냐는 것이었다. 컴퓨터와 관련된 동아리에 들어서 마치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오던 학생들처럼 밤새 지적탐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반면, 이전부터 꿈꿔오던 음악을 해보고 싶기도 하였다. 결국은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었고, 어찌 되었든 내 대학 생활의 가장 큰 축을 차지해버렸었다. 전공 선택도 이 때 했었지. 어릴 때부터 생각해오던 전산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생물과 연관된 생명공학인가, 아니면 마음 한 구석에서 동경해오던 건축인가. 이 당시 어느 것이든 한 가지라도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지금의 나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

막 제대를 하려던 2004년의 가을도 그리운 때이다. 아니 제대하기 조금 전으로 땡길까? 남들은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군대라고 하지만, 난 운이 좋았다. 운전을 배우고 영어실력이 조금 늘은 것은 둘째치고, 군 생활 동안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생활은 아주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아마 앞으로 우리들이 그 곳에서 그렇게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제대하면서 갖게 된 정신적, 시간적 여유로움도 그립다. 물론 지금도 그에 못지 않은 시간이 널려 있지만, 그때만큼 편안하지가 않구나…

그리고 보니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이 참 많구나. 생각날 때마다 이제 잊어버리지 않도록 기록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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