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008

그늘 아래

2008년 2월 17일 7번째

타블렛에 쌓인 먼지도 털어볼 겸 별 생각 없이 끄적거렸다. 왠지 화사한, 하지만 즐겁진 않은 그런 느낌을 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나도 모르겠다.

짧은 여행 #0 – 린츠

2008년 2월 3일.

빈에서 열리는 ITnT 2008 전시회 때문에 월요일에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도 묻어갈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실제로 내가 할 일은 거의 없는 데다가 함께 일하는 Jakob도 주말까지 휴가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일주일 간의 배낭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빈에서 프라하, 짤쯔부르크, 할슈타트에 이르는 반쪽짜리 동유럽 코스! 그래도 이거 계획 세우느라 일요일 밤 내내 고생했다. 사실 그날은 아침부터 린츠 시내에 나가서 제대로 관광을 하고 온 날이기도 하였다.

린츠에 나가는 것이 벌써 세번째인가. 하지만 매번 게으름 피우다 오후 늦게나 도착하였기 때문에 정작 식당 빼고는 딱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작정을 하고 Ars Electronica Center부터 Lentos Art Museum을 거쳐 P?stlingberg 정상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만들었다.

Ars Electronica Center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Ars Electronica Center. 아쉽게도 올해말까지 확장 이전 공사를 하는 바람에 지금은 시내 구석의 조그만 건물에서 상설 전시를 열고 있다. 주로 SIGGRAPH Emerging Technologies 등지에 나왔던 작품들이 초청되어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감탄할 만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전시장의 주 관람객인 어린이와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쉽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지금 언뜻 떠오르는 것들은 향기를 인식하여 꽃을 시각화해주는 hanahana와 그 옆의 drawn, 그리고 친절하게 따라다니며 설명해주던 도우미 아가씨 정도?; Manual Input Sessions도 예전에 인터넷에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색다른 느낌이랄까. The Khronos Projector는 기대를 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크기가 작고 스크린이 낡아서 그런지 감흥이 적었다. MIL에 같이 있는 학생이 Ars Electronica Futurelab에서 함께 작업했다는 Gulliver’s World는 꽤 큰 규모로 전시되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여 전체 구조가 한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더라. 구경하던 아이들도 도장을 몇번 누르더니 금새 어리둥절해 하며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전시물은 역시 관객의 눈높이에 맞도록 특정 주제를 가지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Lentos Art Museum

Lentos Art Museum은 나름대로 린츠의 랜드마크라고 불리는 곳이다. 밤중에 도나우 강변을 바라보면 눈에 띄는 형광색으로 밝게 빛나는 상자를 볼 수가 있는데, 어찌보면 공사중이던 압구정동 갤러리아와도 비슷한 느낌?; 아무튼 세련된 외양 만큼이나 세련된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린츠 시립 미술관이다. 이날 지하에서는 알 수 없는 영상 작품 두 편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한 편은 삼면의 벽에 각각 연관되는 영상들이 동시에 뿌려지는 작품이었고, 다른 한 편은 끝이 없이 무한 반복이 되는 작품이었다. 다행이 두번째 작품이 있는 방에는 의자가 있길래 허리 안 좋은 난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위층에서는 여러 현대 작가들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었는데 사진이 허용되지 않아 남은 기억이 별로 없네. 다만 에곤 쉴러, 구스타프 클림트 등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도 몇 점 걸려 있었다는 점. 일요일이라 그런지 굉장히 한산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는 점. 의외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이런 현대 미술을 보러 많이 오셨다는 점. 이런 점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허기진 배는 중앙광장의 케밥집에서 달랬다. 11시에 연다고 써있는데 내가 들어간 2시 정도에 문을 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주인은 부자 되긴 글른 모양. 그래도 양도 많고 맛있었다.

P?stlingberg Railway

오후에는 P?stlingberg에 있는 ‘유럽에서’ 제일 가파른 전차를 타러 갔다. 처음엔 세계 제일인 줄 알았는데 그건 홍콩에 있다며. 하지만 이곳의 묘미는 오래된 전차나 가파른 경사에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금방 깨닫았다. 사실 전차 안에 타고 있으면 어떻게 올라가는지도 잘 모르는 법이니까. 이날 린츠의 날씨는 굉장히 좋았는데 P?stlingberg 언덕 꼭대기의 풍경, 그리고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린츠의 풍경은 절대 잊을 수가 없겠다. 여길 갈까 OK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 갈까 살짝 고민했었는데 후회 안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린츠의 노을

아, 전날 먹은 Linzer Torte 얘기를 빠뜨렸네. 해질녁 문득 바라본 하늘의 노을이 너무 예뻐서 무작정 따라갔던 골목길의 끝에는 린츠 성당인지 교회가 있었다. 사진 몇장 찍고 옆을 돌아보니 바로 그 유명한 Cafe Jindrak이 보였다. 오리지날 Sachertorte는 못 먹었지만 오리지날 Linzer Torte는 먹어본다는 신념으로 커피 한잔하고 왔다. 한국 커피샵에서는 비싸다고 거의 안 먹어본 것들이라 비교할 수 없지만, 뭔가 깊고 진한 맛이 느껴졌달까… 맛있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