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007

고요한 산책

이 동네는 요즘 사람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부터 새해를 지나 1월 6일 정도까지는 거의 공식적으로 휴가 기간을 갖는 듯 하다. 덕분에 기숙사에 쳐박혀서 밥 아닌 밥을 해먹으며 끼니를 떼우고 있는 참인데, 어제는 너무 따분하길래 잠깐 산책을 다녀왔다. 사실 첫날 Jakob의 차를 타고 한 바퀴 돌기는 했는데, 워낙 길치이다 보니 다시 한번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요한 거리

여기는 신기하게도 중앙선이 주황색이 아니다! 그리고 역시 질서 잘 지킨다고 소문난 독일의 바로 옆 나라답게 매너가 있는 듯.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몸을 딱 돌리니까 양쪽에서 오던 차들이 모두 갑자기 멈춰 서버렸다. 여담으로 이곳의 차들은 모두 외제차다!-_-;; 아우디, 폭스바겐, BMW 정도가 제일 많이 보이고, 마즈다도 은근히 눈에 많이 띈다. 국산차는 투싼이랑 산타페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Unimarkt

이곳은 제일 가까운 대형(!) 할인(?) 마트인 Unimarkt. 물가가 다르니 싼 건 잘 모르겠고, 솔직히 물건이 많은 것 같지도 않다. 화장실에 놓을 슬리퍼를 사려고 했는데 없다! 라면도 없다!ㅠ_ㅠ 이 동네 빵은 중유럽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기만 하고 별 맛은 없더라. 덕분에 집에서 가져온 컵라면이랑 햇반으로 연명하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이제 다 떨어졌다.

이름은 아직 모르는 빵집

빵을 사려면 바로 위에 보이는 빵집으로 가라고 하던데, 아직 휴일이라 문을 안 열었더라. 여기 빵은 좀 맛있으려나…

구건물 FH1

자, 여긴 돌아오는 길에 찍은 학교 건물이다. 워낙 작은 곳이라서 그런지 연구실이나 강의실 등이 있는 건물은 달랑 3개 밖에 없다. 오히려 기숙사나 부대 시설 건물들이 더 많고 큰 것 같다. 대부분의 건물 1층은 저런 식으로 뻥 뚫려 있어 주차장으로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 좀 색다른가? 아무튼 컨테이너 박스처럼 투박하게 생겼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다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이곳 기숙사도 그렇고, 나름 선진국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_-?;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여기는 위도가 높아서 그런지 해도 일찍 진다. 요즘 워낙 날씨가 우중충한데다, 온통 잿빛 풍경에 둘러 쌓여 있고, 해도 짧으니 뭔가 기분이 몽롱하다. 나 말고는 다 정지되어 있는 그런 느낌. 이러다가 나도 멈추어 버릴 것만 같다.

불행중 다행인 소식! 이번 주말에는 이곳을 벗어나 수도 빈에 다녀올 것 같다. Jakob의 여동생들(!)이 빈에서 새해 기념 파티를 하는데 그쪽에 낄 수 있도록 주선을 해준 것이다. 슈테판 성당에 갈 것이라고 하는데, 쿠쿠쿠의 안내를 읽어보면 이곳에서는 매해 실베스터 때마다 즐거움이 가득한 일들(?!)이 펼쳐진다고 한다~ 주말에 놀려면 미리미리 준비 잘 해놔야겠다^^;

Media Interaction Lab

Media Interaction Lab

이번에는 이곳 오스트리아 연구실 이야기를 잠깐 하려고 한다. 이름은 Media Interaction Lab. 아마 상당히 생소한 곳일 것 같은데, 최신 트렌드에 맞추어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최근에는 Office of Tomorrow라는 주제로 여러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으며, 예전에는 증강현실 분야에서 유명한 AMIRE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지난 여름 서울에서 열렸던 Imagine Cup 2007의 Software Design 부문에서 우리나라 팀이 수상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었는데, 이때 Interface Design 부문에서 1등을 하였던 작품이 이곳에서 출품했던 INTOI라는 소프트웨어였다.

연구실의 Michael Haller 교수님과는 ISUVR 2007ISMAR 2007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오게 된 것은 ISMAR 2007 Workshop에서 발표되었던 Comino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다.

3DV Systems ZCam Prototype

얼마 전 전자신문 기사에서도 소개되었던 3DV SystemsZCam을 이용하여 새로운 상호작용을 덧붙이는 작업을 맡게 된 것이다. Andy Wilson이 최근 보여주었던 데모와 유사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부담도 크다. 아직 아이디어 정리가 다 되지 않았는데, 1월말까지는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지.

앞으로 두달동안 내 자리

여기는 열심히 삽질일하라고 마련해준 내 자리. 전반적인 연구실의 느낌은 깔끔하면서 실용적이라고 할까나? 상주인원도 5명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아늑한 분위기일 것 같다. 새로운 생활, 기대되는 걸!

Hagenberg, Austria

정말 간만의 블로깅. 1년도 더 지났구나. 그 동안 바쁜척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안 되겠다. “순간의 생각을 영원의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첫 글을 쓴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아쉽게 흘려보낸 생각들이 너무나도 많다.

자, 그럼 그동안 어디서 무얼하고 지냈는고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고. 지금은 잠시 머나만 나라, 오스트리아의 시골 동네에서 머물고 있는 중이다. 오스트리아 제 3의 도시인 Linz에서 30분 정도 차를 밟으면 이곳 Hagenberg에 이를 수 있다. 주민이 2500명이라고 했던가. 굉장히 작은 마을이다. Upper Austria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IT 관련 캠퍼스가 있는데, 이곳의 Media Interaction Lab에서 2월말까지 두달동안 머물게 되었다.

연구실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일단 먹고 자는 것부터~ 한달에 299 유로짜리 flat의 기숙사인데, 생각보다 훨씬 좋다.

중간문

들어가면 중간에 이렇게 문이 하나 더 있으며,

책상

책상도 무지하게 넓다. 선반도 널려 있고, 옷장에, 탁자까지 없는 것이 없다. 1인실이라면서 의자는 무려 4개나 있다.

부엌

부엌에도 전자렌지 빼고는 다 있는데, 안타깝게도 냄비가 없다. 얼른 구해서 라면 끓여 먹어야 하는데…

화장실

화장실도 깔끔하다. 바닥에 물 빠지는 구멍이 없는 것은 싫어하는 스타일인데, 뭐 안 흘리면 되니까-_-

푸짐한 식단

이렇게 훌륭한 방에서 푸짐한 식단을 차려먹으며 호의호식하는 중이다. 캬캬캬~ 사실 출국 직전에는 근 7년만에 최저 몸무게를 기록하며 턱선을 살려가고 있었는데,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창 너머로 보이는 흑백의 풍경

마지막으로 창 밖의 풍경. 오래된 숲이 하나 있는데, 눈을 맞고 얼어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흑과 백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정지되어 있는 세상. 크리스마스 이브지만 사람의 발자취를 느낄 수 없는, 그렇게 차갑고 고요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