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아주머니들

말끔하게(!) 청소를 마친 나의 침실

이곳 기숙사 시설은 전에도 얘기했듯이 꽤나 잘 꾸며져 있다. 가격도 신촌의 하숙집이나 원룸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매일 아침 청소도 해준다! 마치 호텔과도 같이 호화로운 서비스를 경험한 당시에는 상당히 고무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기숙사를 놔두고 왜 연구실 사람들은 모두 멀리서 출퇴근하는 것일까? Linz의 집값이 더 싸서? 자동차 기름이 남아서? …알고 보니 이곳 기숙사에는 엄청난 단점이!

때는 12월 말, 길고 긴 연휴 사이에 이틀 정도 끼어 있던 평일이었다. 평일이기는 해도 연구실은 아직 휴가중이었고, 기숙사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마주치기 힘든, 그런 고요한 때였다. (그래서) 난 늦잠을 자고 있었다. 헌데 이게 왠 걸? 잠결에 문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웅성웅성 시끄러워진다. 이윽고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엄청난 크기의 청소기와 휴지통을 끌고는 불쑥 들어오는 것이다. 잠은 이렇게 깨라고 있는 것이구나. 독어라 말은 안 통하지, 어색한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잠옷 바람으로 복도에 내쫓긴 나는 쭈뼛쭈볏 청소가 끝나기 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담배는 이럴 때 피라고 있는 것일까나? 가만히 서서 할 일이 참 없더라.

하지만 사연을 더 들어보니 이건 약과였다. 화장실에서 문 잠그고 볼 일 보고 있어도 문 따고 들어오신다고 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이 아주머니들, 기숙사 사감의 지령이라도 받는 것인지 밤새 친구라도 데리고 와서 놀다가 걸리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도 있다. 얼마 전에도 한 학생이 운 나쁘게 걸리는 바람에 담당 교수한테까지 불려갔다는 소문이 흉흉하다.

연구실 학생의 말을 들어보면 본인은 카톨릭 전통이 강한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도 살아 봤지만 여기처럼 빡빡하게 굴지는 않았다며 불평을 한다. 그래서 이곳 학생들은 차라리 시설이 더 구리고 3명이 한 채를 쓰지만 밤새 파티를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옆 기숙사를 선호하거나, 아니면 아예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을 구한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오스트리아의 기숙사들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설 업체가 입주해서 운영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프로페셔널한 기숙사가 되어야 할테니 그만큼 까탈스러운 것이겠지.

뭐, 이렇게 불평을 하는 것 같아도 사실 나한테 별로 나쁠 건 없다. 덕분에 아침에 늦잠을 못 자겠다. 딱히 출근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8시가 넘어가면 아줌마들 들어올까봐 불안한 마음에 잠을 잘 수가 없다. 한 30분이라도 더 자버린 날은 샤워도 안 하고 후다닥 뛰쳐나간다. 화장실 안에서 그분들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엔 참 난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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