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

비 오는 밤 우연히 마주친 연우와 수영

비 오는 밤 우연히 마주친 연우와 수영

난 수영씨가 착한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전 아저씨가 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집에 혼자 남은 토요일 밤, 불이 꺼진 어두운 방 한켠에서 한손에 KGB, 다른 한손에는 프링글스를 들고 반쯤 취해 봤던 영화. 잔잔하고 따뜻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아려오는 그 느낌에 더 취하게 된 듯. 원작이 만화라는 사실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알았다.

짧은 여행 #7 ? 할슈타트

2008년 2월 10일.

게스트 하우스에 남겨 놓은 마지막 흔적

게스트 하우스에 남겨 놓은 마지막 흔적

아침 알람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순간 눈앞에 펼쳐진 절경. 잠이 번쩍 깨인다. 어제 밤에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둠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곳이 바로 할슈타트!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골목길 어귀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골목길 어귀

밖에 나와보니 어제 밤 뿌연 안개의 느낌은 온데간데 없다. 파란 하늘과 검푸른 호수, 시원하게 깎인 산봉우리들. 그리고 그 사이에 알록달록 박혀있는 지붕들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한국 관광객을 위한 천연소금

한국 관광객을 위한 천연소금

할슈타트를 비롯한 이곳 짤츠캄머굿은 예부터 이름 그대로 소금광산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나 보다. 삐둘빼뚤 반가운 한글. 일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아 기념품으로 챙겨 올 수는 없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는 파란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는 파란

이곳의 전반적인 느낌은 바로 이런 것. 달리 말이 필요 없다. 보정 안 한 사진 그대로이다.

파란 하늘, 그리고 푸른 물

파란 하늘, 그리고 푸른 물

역시 마찬가지. 이 푸르름으로 눈이 정화되는 것 같다.

할슈타트에서 만난 소금광산 돌하루방

할슈타트에서 만난 소금광산 돌하루방

호수에서 발길을 돌려 산등성이로 향해본다. 소금광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요즘도 실제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돌하루방을 닮은 광부상이 보인다.

소금광산으로 향하는 기차길

소금광산으로 향하는 기차길

여름에 오면 이 철길을 따라 곧장 올라갈 수도 있다는데 겨울에는 휴업. 운동 삼아 걸어 가보자. 다행히 오늘은 날씨도 참 좋다.

한글 낙서가 많이 보이는 팔각정

한글 낙서가 많이 보이는 팔각정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팔각정. 잠시 앉아 저 아래의 호수를 내려다 본다. 반가운 한글 낙서들이 많이 보이네.

만년설이라도 되는 듯 펼쳐진 정상의 설경

만년설이라도 되는 듯 펼쳐진 정상의 설경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꽤 쌀쌀해지며 제법 겨울산다워진다. 세상에 눈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다니. 하마터면 크게 미끄러져 황천길 갈 뻔 했다. 원래는 소금광산 투어를 위한 리조트 같은 것이 있는데 겨울이라 휑하다. 마치 유령 도시 같다.

꼭대기 어느 집 앞에서 만난 동네 사람 Regina

꼭대기 어느 집 앞에서 만난 동네 사람 Regina

하도 목이 말라 언덕 위에 높은 집으로 올라가니 반갑게도 사람이 있다. 할슈타트 토박이인 Regina. 물은 못 얻어 마셨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며 한숨 돌렸다. 할슈타트도 시골 마을인지라 이제 젊은 사람도 별로 없고 조용하단다. 여름에는 목공 학교가 열려서 사람들이 제법 붐비기도 한다는데 겨울에는 이렇게 한가한가보다. 하겐버그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게도 좋은 학교가 있는 곳이지 않냐며 대꾸를 해주었다.

높은 자락 암벽에 피어난 고드름

높은 자락 암벽에 피어난 고드름

내려오는 쪽 길은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꽤나 미끄러웠다. 이렇게 고드름도 주렁주렁. 참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곳이구나, 할슈타트는.

교회 뒷마당 양지 바른 곳의 묘비

교회 뒷마당 양지 바른 곳의 묘비

이 길은 곧장 마을 교회의 뒷마당으로까지 이어진다. 유골함이라고 했던가? 예쁘게 장식된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할슈타트에 들어오기 위한 필수 아이템인 배

할슈타트에 들어오기 위한 필수 아이템인 배

저기 멀리에는 배가 보인다. 바로 어제 타고 왔던 그 배.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내린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있다.

와인 한잔에 벌개진 채로 할슈타트 귀환 인증샷

와인 한잔에 벌개진 채로 할슈타트 귀환 인증샷

배 시간에 맞춰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늦은 점심을 든든히 챙겨 먹었다. 호수에서 바로 건져 올린 생선 요리와 와인 한 잔. 금새 취기가 오른다. 얼굴이 벌개졌다. 그래도 왔다간 흔적은 남겨야지. 다른 한국 관광객에게 부탁하여 유일한 인증샷을 만들어냈다.

푸른 물결을 헤치고 돌아오는 항해길

푸른 물결을 헤치고 돌아오는 항해길

이제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항해길. 잠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회사 휴가를 내고 함께 오셨다는 두 분의 숙녀. 그리고 방송작가가 꿈이라며 언젠가 할슈타트를 배경으로 영상을 찍고 싶다고 했던 여학생. 짧은 만남이었지만 삶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접어내는 할슈타트 기차역

일주일간의 여행을 접어내는 할슈타트 기차역

이제는 정말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며 지난 일주일간의 여행을 정리한다. 20대에 배낭여행을 꼭 가봐야 하는 이유를 이제서야 깨닫는구나.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아쉬움을 뒤로 하며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한다.

짧은 여행 #6 ? 짤츠부르크 ~ 할슈타트

2008년 2월 9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상쾌한 토요일 아침을 맞이 하였다. 여행 기간 중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만큼 마음은 들떴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물감을 뿌린듯 짙푸른 하늘과 우유곽처럼 하얀 건물들

물감을 뿌린듯 짙푸른 하늘과 우유곽처럼 하얀 건물들

일단 숙소가 있던 신시가지의 거리를 걸어본다. 따로 찾아다니지 않아도 명소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하다는 미라벨 정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모짜르테움, 카라얀 생가를 비롯해 자허 호텔의 짤츠부르크 분점도 마주쳤다.

돔 광장 근처의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

돔 광장 근처의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

잘자흐 강을 건너 구시가지로 넘어가니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오래된 요새의 언덕 아래 성당을 비롯한 고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돔 광장에서는 토요일 아침의 평화로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간판의 명품거리 Getreidegasse

아름다운 간판의 명품거리 Getreidegasse

이곳은 구시가지의 오래된 명품 거리. 아름답게 조각된 간판들이 눈길을 끈다. 특명을 받았던 탓에 루이 비똥 매장에도 한번 들어가봤다. 하하;

50년 전통의 보스나 그릴

50년 전통의 보스나 그릴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짤츠부르크의 명물 보스나 그릴. 50년도 더 넘은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어찌나 줄이 길던지, 허기진 배와 싼 가격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쳐 버렸을지도. 하지만 한 입 베어무니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바삭한 빵의 감칠맛과 톡 쏘는 소스의 향긋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물의 궁전, Schloss Hellbrunn

물의 궁전, Schloss Hellbrunn

오후에 남는 시간에는 잠시 짬을 내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 근처의 헬부른 궁전에 다녀왔다. 여름에 가면 온갖 분수들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차분한 풍광이었다. 따스한 겨울 어느 토요일 오후의 이 느긋함. 짤츠부르크의 일상은 이런 것일까. 괜시리 낭만적인 상상에 빠져본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할슈타트 기차역

어둠이 짙게 깔린 할슈타트 기차역

이제 더욱 더 낭만적인 호수 마을 할슈타트로 발길을 향하자. 기차를 두어번 갈아타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치를 맞이한다. 넓디 넓은 호수와 깎아 지른 산등성이들. 이들 알프스 산맥의 호수들을 모아서 짤츠캄머굿이라고도 부른댄다. 어느 덧 해가 저물고 도착한 곳은 할슈타트 기차역. 이곳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마을이 있다. 달빛조차 없는 어둠은 호수의 너비를 가늠케하지 않는다. 쉭쉭 물길을 가르는 소리만이 내 마음을 가르고 있다. 오늘 밤은 미리 예약해 두었던 숙소에서 마음의 정리도 하면서 일찌감치 잠을 청해야지.

내일은 이번 여행의 방점을 찍는 날. 하겐버그로 돌아가야 한다.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