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06

오늘도 달렸다

가끔 가슴이 꽉 막힌 듯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어제도 그랬다. 방안의 불을 끄고선 음악의 볼륨을 키우고 침대에 누워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왠지 달리고 싶었다. 오랜만에 느끼고 싶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탄천은 붐볐다. 그 틈을 헤집고 달렸다. 마냥 달렸다.

오늘도 그랬다. 달리고 난 후에는 여전히 왼쪽 다리와 허리에서 심한 통증을 느낀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달리고 있는 순간만큼은 아프지 않다. 달리고 있는 순간만큼은 모든 마음을 비울 수 있다.

탄천에서 중앙공원을 따라 가는 길에는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좋다. 밤눈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숨이 차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지.
지나간 시련의 슬픔에 젖어 울고 있는지.
다가올 행복의 상상에 빠져 웃고 있는지.

그들은 알 수 없을 걸. 사실은 나도 잘 모르지만.

비가 오는 이 밤길을 정신없이 그냥 걷고 있네
한도 없이 걷다보면 너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얼마나 더 가야하는가

이건 갑자기 생각난 노래 가사.

긴긴 시간이 결코 길진 않지
너만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널 느낄 수 있다면
나의 그 모든 것들 보단
너의 그 미소 하나가 중요함을
더 소중함을
나 그댈 위한 춤을 출게 그댈 위한 춤
나 그댈 위해 준비했던 그댈 위한 춤
상처뿐인 그대 작은 어깨와 손목을 감싸안고
그래 나에게만 늘 차갑던 그대를 안고

별로 상관은 없지만 이건 이틀동안 달리는 내내 귀가 닳도록 들었던 노래 가사.

변해버린 Gentoo Linux

서버를 하나 만들 일이 생겨서 간만에 Gentoo Linux를 깔게 되었다. 요즘에는 Ubuntu가 대세라고들 하지만 역시 그나마 손에 익은 걸 바꾸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처음부터 스스로 하나하나 설정해가는 손맛에 길들여졌다고 해야할까.

여하튼 현재 최신 버전인 2006.0을 받아서 구웠다. 그런데 이게 뭐지? 이제는 Stage3만 지원한다고? 분명 지난 학기에 깔아서 쓸 때만 해도 이런 말이 없었는데 그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한참 얘기가 많았던 LiveCD를 통한 인스톨러까지 정식으로 지원하고 있구나.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지지만, 이렇게 되니 다른 배포판과는 달랐던 Gentoo만의 특색이 희석되어버린 느낌이다. 이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간 것도 볼 수 있었다. 결론은 달라진 것 없다이겠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사실 Stage3부터 들어간다고 해도 부트스트랩의 기반이 조금 옛날 버전들로 된다는 것과 최적화 옵션의 선택폭이 줄어든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Stage1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어차피 옵션은 크게 건들지 않는 편이고, 또한 계속 emerge를 하다 보면 최신 버전으로 모두 올라가 있을텐데. 그렇다면 남는 것은 내가 직접 만지느냐, 스크립트가 대신하느냐의 차이인 것일까. 혹시 이것은 저자동고유연성의 본능적인 추구?

Matthew Bourne’s Swan Lake

The Swan and The Prince

공연예술비평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Matthew Bourne백조의 호수(Swan Lake)를 보았다. 사실 원작도 잘 모르지만, 댄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개척하여 대사 한마디도 없이 몸과 그 움직임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 특히 DVD판의 주인공으로서 백조(와 흑조)를 연기한 Adam Cooper는 같은 남자가 보아도 정말 아름답다는 말 밖에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혹시 내용이나 장면이 궁금하다면 이곳에서 주요 사진들을 감상할 수도 있다.

이로써 한 학기동안 정말 열심히 들었던 수업이 종강을 맞이하였다. 2학점짜리 수업이었지만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면서 공연을 보았다. 주공행장, 로미오와 줄리엣, 유령을 기다리며, 맥베드, The Show,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여기에 덤으로 드라큘라까지. 앞으로 살면서 언제 또 이렇게 공연을 보러다닐 수 있으려나. 이번 학기의 추억들은 아마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