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Life’

짧은 여행 #1 ? 빈

2008년 2월 4일.

딱 한달만에 돌아오는 빈이다. 2박 3일동안 열리는 ITnT 2008에 연구실의 새로운 테이블 탑 시스템인 Flux가 전시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잠깐 언급했던 바 있는 Intoi의 후속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Microsoft 부스 내에 초청받아 전시된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Surface라고 착각하기도. 출발 전 급조한 팜플렛에는 부시시한 내가 모델로 출연하기도 했다.

내가 주인공으로 나온 FLUX 팜플렛!

내가 주인공으로 나온 FLUX 팜플렛!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관광 모드 돌입. 일단 민박집부터 찾았다. 일부러 전시장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골랐지. 비엔나하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든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짐을 푼 다음에는 일단 근처의 Kunsthaus를 관람하였다. 유명한 건축가 Hundertwasser와 또 유명한 사진작가 누군가의 전시가 있었는데 이름은 까먹었다.

알록달록 아담한 빈 시립 미술관

알록달록 아담한 빈 시립 미술관

저녁에는 Wiener Staatsoper에서 Tosca 공연을 봤다. 원래는 굉장히 비싼 공연이지만 특이하게도 입석 티켓을 공연 직전에 판매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고, 배낭여행객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몇시간씩 줄을 서서 사곤 한단다. 서민들에게도 열려 있는 공연을 하기 위해서라나. 줄 서다가 만난 수다스러운 브라질 친구들과 함께 보았는데 내용은 그다지 기억 나지 않는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맨 끝 자리에서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맨 끝 자리에서

오페라 하우스 바로 옆에는 Sachertorte의 바로 그 Hotel Sacher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보지는 못 했지만.

Sachertorte의 바로 그 Hotel Sacher

Sachertorte의 바로 그 Hotel Sacher

참, 빈에 오는 길에는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 들려 아침을 먹었는데 간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르쉐! 가끔 큰 맘 먹고 가서 먹는 그곳이 원래는 이렇게 평범한 곳이었구나.

짧은 여행 #0 – 린츠

2008년 2월 3일.

빈에서 열리는 ITnT 2008 전시회 때문에 월요일에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도 묻어갈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실제로 내가 할 일은 거의 없는 데다가 함께 일하는 Jakob도 주말까지 휴가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일주일 간의 배낭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빈에서 프라하, 짤쯔부르크, 할슈타트에 이르는 반쪽짜리 동유럽 코스! 그래도 이거 계획 세우느라 일요일 밤 내내 고생했다. 사실 그날은 아침부터 린츠 시내에 나가서 제대로 관광을 하고 온 날이기도 하였다.

린츠에 나가는 것이 벌써 세번째인가. 하지만 매번 게으름 피우다 오후 늦게나 도착하였기 때문에 정작 식당 빼고는 딱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작정을 하고 Ars Electronica Center부터 Lentos Art Museum을 거쳐 P?stlingberg 정상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만들었다.

Ars Electronica Center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Ars Electronica Center. 아쉽게도 올해말까지 확장 이전 공사를 하는 바람에 지금은 시내 구석의 조그만 건물에서 상설 전시를 열고 있다. 주로 SIGGRAPH Emerging Technologies 등지에 나왔던 작품들이 초청되어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감탄할 만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전시장의 주 관람객인 어린이와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쉽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지금 언뜻 떠오르는 것들은 향기를 인식하여 꽃을 시각화해주는 hanahana와 그 옆의 drawn, 그리고 친절하게 따라다니며 설명해주던 도우미 아가씨 정도?; Manual Input Sessions도 예전에 인터넷에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색다른 느낌이랄까. The Khronos Projector는 기대를 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크기가 작고 스크린이 낡아서 그런지 감흥이 적었다. MIL에 같이 있는 학생이 Ars Electronica Futurelab에서 함께 작업했다는 Gulliver’s World는 꽤 큰 규모로 전시되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여 전체 구조가 한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더라. 구경하던 아이들도 도장을 몇번 누르더니 금새 어리둥절해 하며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전시물은 역시 관객의 눈높이에 맞도록 특정 주제를 가지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Lentos Art Museum

Lentos Art Museum은 나름대로 린츠의 랜드마크라고 불리는 곳이다. 밤중에 도나우 강변을 바라보면 눈에 띄는 형광색으로 밝게 빛나는 상자를 볼 수가 있는데, 어찌보면 공사중이던 압구정동 갤러리아와도 비슷한 느낌?; 아무튼 세련된 외양 만큼이나 세련된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린츠 시립 미술관이다. 이날 지하에서는 알 수 없는 영상 작품 두 편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한 편은 삼면의 벽에 각각 연관되는 영상들이 동시에 뿌려지는 작품이었고, 다른 한 편은 끝이 없이 무한 반복이 되는 작품이었다. 다행이 두번째 작품이 있는 방에는 의자가 있길래 허리 안 좋은 난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위층에서는 여러 현대 작가들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었는데 사진이 허용되지 않아 남은 기억이 별로 없네. 다만 에곤 쉴러, 구스타프 클림트 등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도 몇 점 걸려 있었다는 점. 일요일이라 그런지 굉장히 한산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는 점. 의외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이런 현대 미술을 보러 많이 오셨다는 점. 이런 점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허기진 배는 중앙광장의 케밥집에서 달랬다. 11시에 연다고 써있는데 내가 들어간 2시 정도에 문을 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주인은 부자 되긴 글른 모양. 그래도 양도 많고 맛있었다.

P?stlingberg Railway

오후에는 P?stlingberg에 있는 ‘유럽에서’ 제일 가파른 전차를 타러 갔다. 처음엔 세계 제일인 줄 알았는데 그건 홍콩에 있다며. 하지만 이곳의 묘미는 오래된 전차나 가파른 경사에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금방 깨닫았다. 사실 전차 안에 타고 있으면 어떻게 올라가는지도 잘 모르는 법이니까. 이날 린츠의 날씨는 굉장히 좋았는데 P?stlingberg 언덕 꼭대기의 풍경, 그리고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린츠의 풍경은 절대 잊을 수가 없겠다. 여길 갈까 OK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 갈까 살짝 고민했었는데 후회 안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린츠의 노을

아, 전날 먹은 Linzer Torte 얘기를 빠뜨렸네. 해질녁 문득 바라본 하늘의 노을이 너무 예뻐서 무작정 따라갔던 골목길의 끝에는 린츠 성당인지 교회가 있었다. 사진 몇장 찍고 옆을 돌아보니 바로 그 유명한 Cafe Jindrak이 보였다. 오리지날 Sachertorte는 못 먹었지만 오리지날 Linzer Torte는 먹어본다는 신념으로 커피 한잔하고 왔다. 한국 커피샵에서는 비싸다고 거의 안 먹어본 것들이라 비교할 수 없지만, 뭔가 깊고 진한 맛이 느껴졌달까… 맛있었다는 뜻:)

기숙사 아주머니들

말끔하게(!) 청소를 마친 나의 침실

이곳 기숙사 시설은 전에도 얘기했듯이 꽤나 잘 꾸며져 있다. 가격도 신촌의 하숙집이나 원룸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매일 아침 청소도 해준다! 마치 호텔과도 같이 호화로운 서비스를 경험한 당시에는 상당히 고무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기숙사를 놔두고 왜 연구실 사람들은 모두 멀리서 출퇴근하는 것일까? Linz의 집값이 더 싸서? 자동차 기름이 남아서? …알고 보니 이곳 기숙사에는 엄청난 단점이!

때는 12월 말, 길고 긴 연휴 사이에 이틀 정도 끼어 있던 평일이었다. 평일이기는 해도 연구실은 아직 휴가중이었고, 기숙사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마주치기 힘든, 그런 고요한 때였다. (그래서) 난 늦잠을 자고 있었다. 헌데 이게 왠 걸? 잠결에 문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웅성웅성 시끄러워진다. 이윽고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엄청난 크기의 청소기와 휴지통을 끌고는 불쑥 들어오는 것이다. 잠은 이렇게 깨라고 있는 것이구나. 독어라 말은 안 통하지, 어색한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잠옷 바람으로 복도에 내쫓긴 나는 쭈뼛쭈볏 청소가 끝나기 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담배는 이럴 때 피라고 있는 것일까나? 가만히 서서 할 일이 참 없더라.

하지만 사연을 더 들어보니 이건 약과였다. 화장실에서 문 잠그고 볼 일 보고 있어도 문 따고 들어오신다고 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이 아주머니들, 기숙사 사감의 지령이라도 받는 것인지 밤새 친구라도 데리고 와서 놀다가 걸리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도 있다. 얼마 전에도 한 학생이 운 나쁘게 걸리는 바람에 담당 교수한테까지 불려갔다는 소문이 흉흉하다.

연구실 학생의 말을 들어보면 본인은 카톨릭 전통이 강한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도 살아 봤지만 여기처럼 빡빡하게 굴지는 않았다며 불평을 한다. 그래서 이곳 학생들은 차라리 시설이 더 구리고 3명이 한 채를 쓰지만 밤새 파티를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옆 기숙사를 선호하거나, 아니면 아예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을 구한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오스트리아의 기숙사들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설 업체가 입주해서 운영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프로페셔널한 기숙사가 되어야 할테니 그만큼 까탈스러운 것이겠지.

뭐, 이렇게 불평을 하는 것 같아도 사실 나한테 별로 나쁠 건 없다. 덕분에 아침에 늦잠을 못 자겠다. 딱히 출근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8시가 넘어가면 아줌마들 들어올까봐 불안한 마음에 잠을 잘 수가 없다. 한 30분이라도 더 자버린 날은 샤워도 안 하고 후다닥 뛰쳐나간다. 화장실 안에서 그분들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엔 참 난감할 것이다.